어머니를 보내드리며

2011년 5월, 어머니의 유방암 발병은 나의 삶을 많이 바꾸어 놓았다. 어머니의 치유를 위해 시작된 나의 기도는 아버지와 동생들 그리고 주변의 사람들을 위한 기도로 넓어져 갔다.  수술과 항암치료의 긴 과정을 옆에서 보고 같이 있어드리지 못한 아쉬움에, 나는 어머니께 거의 매일 전화를 드려 안부를 묻고 기도해 드렸다. 하지만 2013년 7월 말, 어머니는 다시 뇌경색으로 쓰러지셨다. 응급실로 들어가셔서 중환자실과 일반 병실을 오가시며 두 달을 넘게 계셨고 치매를 갖고 퇴원하시게 되었다. 요양원과 병원 그리고 다시 요양병원등에서 치료를 받으시던 어머니는 2014년 5월 13일 하늘나라로 떠나셨다.

동생의 연락을 받고 한국으로 가는 비행기 안에서 나는 모든 장례 일정을 마치며, 하나님의 은혜와 영광을 보게 해 달라고 기도했다. 한국 도착 후 곧바로 향한 장례식장에서 나의 도착을 위하여 지연 된 입관의식을 치르고 여러번의 위로 예배를 드렸다. 다음날의 발인 예배와 벽제 승화원에서 화장을 마치고 어머니를 보내드렸다. 임종을 못 지킨것과 치매로 인해 어머니의 유언이나 당부를 들을 수 없었던 것이 마음에 짐과 아쉬움으로 남았다.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기 일주일전의 어머니
뇌경색으로 쓰러지시기 일주일전의 어머니

새벽3시에 잠이 깨어 어머니께서 늘 성경을 보시던 작은 책상에 성경을 폈다. 사무엘상 1장부터 읽으며 한나의 서원기도, 그리고 감사기도, 엘리의 두아들들의 죄악등을 읽으며 나의 노트에 말씀과 묵상을 적었다. 그리고 책상위에 있던 어머니의 일기를 펼쳐 보았다. 일기에는 하루 하루의일상과  아들에 대한 그리움, 항암 치료에 대한 두려움 등이 적혀 있었다. 입관 의식과 화장 등에서도 울음이 나오지 않았는데 어머니의 일기를 읽으며 나는 큰소리로 울 수 밖에 없었다. 어머니께 최선을 다하지 못한 죄스러움과 그리움이 몰려왔다. 그리고 일기를 넘기며 어머니가 적은 말씀과 묵상을 보고 놀란 것은 어머니가 사무엘상 1,2장을 읽으시며 같은 말씀을 적고 묵상하셨던 것이다.

‘엘리의 아들들은 행실이 나빠 여호와를 알지 못하고, 여호와의 제사를 멸시하였더라..’

‘결단코 나를 존중히 여기는 자를 내가 존중히 여기고 나를 멸시하는 자를 내가 경멸하리라’

창세기부터 읽기 시작해 한국행 비행기에서 룻기를 읽고 어머니의 자리에서 읽은 사무엘상의 말씀과 묵상을 어머니의 2012년 9월24일 일기에서 본 것이다. 마치 내가 이 말씀을 마음에 새기고 살라는 유언이라는 생각이 들어 그 말씀을 다음날 까지 묵상하고 동생들과 나누었다. 예배를 우선에 두는 것과 하나님을 존중하는 삶, 내가 평생 마음에 새길 말씀을 갖게 된 것에 감사한 마음이 들었다.

그리고 하나 더 감사한 것은 어머니가 천국에 계신다는 확신을 갖게 된 것이다. 평생 새벽기도와 열심으로 사셨던 어머니께서 꿈에라도 나타나 행복하게 계시는 모습을 보여 주셨으면  싶었다. 다음날도 난 새벽 3시에 일어나 어머니의 자리에서 성경을 읽고 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어머니의 흔적을 찾으려 책상 여기 저기를 보다가 오래된 지갑을 발견했다. 지갑에는 오래된 주보와 낡고 삭은 편지가 있었다. 주보는 1979년 부모님께서 다니시던 남현교회의 주보였고 편지는 1965년에 어머니께서 아버지께 보낸 편지 였다. 주보에는 ‘익명을 원하는 한 가정에서 교회에 승용차를 기증하셨습니다’ 라는 광고가 있었다. 기억난다. 포니 승용차. 우린 봉천동에서 제과점을 할 때였고 가족은 매장 뒤켠의 단칸방에서 살 때 였다. 어머니는 우리 집을 사는 것보다 먼저 교회에 자동차를 사드렸었다. 그 당시 동네 과외 선생님이 아이들을 혼낼 때, ‘너흰 공부방도 없이 가게에서 공부하는 영한이를 본 받아야 한다..’고 말씀하시곤 했는데, 그 때는 그것이 어찌나 창피했는지…어머니는 최선으로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셨다.

편지는 결혼 바로 직전, 아버지를 만나러 서울에 오셨다가 대전에 돌아가서 쓰신 것이다. 편지 마지막에 ‘요즘은 잠꾸러기가 아니예요.. 구름위를 걷는 기분이랍니다..’ 라고 결혼을 앞둔행복한 예비신부의 마음이 적혀 있었다. 그래, 우리 어머니도 한때는 수줍고 행복했던 예비신부 였구나하고 생각하는 순간, ‘이제 어머니는 예수님의 신부가 되어 구름위를 걷듯 행복하시겠구나’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 순간 마음 깊은 곳에서 기쁨이 솟아 오르는데 얼마나 감사했는지 모른다. 나의 생각을 맞추어 간것이 아니라 성령님께서 그렇다고 확정해 주신 것이다. 이 기쁨이 어디서 온 것인지 난 알 수 있었다.

어머니의 긴 투병은 나에게는 고난의 시간이었지만, 그 시간동안 나는 하나님과 더 가까워졌고, 동생들과도 같이 기도제목을  나누고 중보하게 되었다. 그리고 떠나시면서도 나에게 귀한 말씀과 깨달음을 주셨다. 살면서 어머니가 더 그리울 것이다. 이제는 기도 제목을 어머니께 알려 드리고 기도해 달라는 부탁을 드릴 순 없지만 내가 우리 가족을 위해 아버지를 위해 동생들을 위해 기도하는 사람이 될 것이다.

어머니의 마지막 일기는 2013년 7월 21일, 쓰러지시기 일주일 전이다. 그 날엔 다른 내용 없이 한 문장 뿐이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어머니의 마지막 고백은 감사였다. 나도 고백한다. 하나님 감사합니다. 귀한 어머니를 주셔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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