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두운 길의 빛

 

말씀은 내 발의 등이요, 내 길의 빛입니다. – 시편 119편 105절

속도는 중요하지 않다. 다만 방향이 중요할 뿐이다. ‘ 많이 인용되는 말이다. 그러면 어디로 가야한단 말인가? 그리고  내가 선택한 길에서 나는 헤메이지 않고 곧은 대로를 걸어갈 수 있을까? 아니다. 누구도 장담할 수 없다. 여러분은 혹시 가로등도 없고 달빛도 없는 캄캄한 시골 길을 걸어본 적이 있는가? 저멀리 빛은 보이지만 달려도 빠져나오지 못하는 터널을 지나 보았는가?

누군가 나의 길을 보여주고 인도해 준다면 그리고 내딛는 발걸음에 빛을 비추어 준다면 얼마나 좋을까? 나의 믿음의 고백은 주가 내 길을 비추어 주시고 인도 하신다는 것이지만 기나긴 기다림과 그리 밝아보이지 않는 나의 미래앞에서 늘 좌절하고는 한다. 그럼에도 감사하게도  과거의 은혜는 늘 잊고 사는 나의 일상에서도 구하는대로 새로운 은혜와 깨달음을 얻는다.

이른 새벽 Club house에서 운동을 마치고 나오는데 하나씩 샌서가 달린 등이 켜진다. 한 번에 복도가 다 밝혀지는 것이 아니라 하나씩 점등된다. 내가 발걸음을 내 딪으면 내 발길을 비추는 것을 보면서 하나님의 방법을 알게 된다.

내 발길을 비추어 인도하시는 하나님,

하나님은 우리에게 길을 열어 주신다. 아무리 길이 없어 보여도 바다를 가르고 벽을 부수어 길을 만들어 주신다. 지금은 볼 수 없지만 시간이 지나면 내가 나온 미로를 볼 수 있다.

내가 움직이고 포기하지 않기를 원하시는 하나님,

포기하면 안된다. 가만히 멈추면 안된다.내가 움직이면 길을 밝히시고 길을 더 보여 주신다. 때로는 내가 원하지 않은 길로 보내기도 하시고 만나고 싶지 않은 사람을 만나게 하신다. 누군들 주저 앉고 싶지 않을까? 그래도 버티고 한 발씩 내딛어야 한다.

그리고 내 필요에 따라 길을 여시는 하나님.

때로는 우리는 우리에게 정말 필요한 것이 무엇인지 알지 못하고 헛된 것을 구한다. 하나님은 정말 필요한 것을 주신다. 나의 생각은 매 순간 바뀌고 내가 원하는 것도 시간이 지나면 시들해 지기도 하지만 하나님의 방법은 변하지 않는다.

왜?

왜 한번에 마스터 플랜을 알려주시고 갈길을 미리 알려주시지 않는 것인가? 만약 그렇다면 이미 알고있는 내 길에서 자만하고 하나님을 잊을까봐 그러시는지? 아님 이미 보여준 길을 보지 못하고 내가 원하는 것만 고집하고 있는 것인지…

내가 아는 한 가지는 찾고 구하는 사람에게는 여러가지 방법으로 알려 주신 다는것, 그리고 그래도 이해할 수 없고 희미하게 보이는 것은 결국 하나님을 만나는 날 다 알게 될 거라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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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Silence’를 보고

하나님의 음성을 들을 수 있다면…나와 우리 공동체가 짊어진 이 고통의 터널에서 건져 주신다면, 아니 단지 지금 감내하는 이 고통의 의미만이라도 알려 주신다면… 이 영화의 질문은 간단하다.

하나님의 침묵 그리고  믿음이란 무엇인가?

엔도 슈샤쿠의 ‘침묵’은 한창 감수성이 예민한 나의 청년기에 읽은 책으로 이야기의 중심에 있는 키치지로의 자기 변명적 외침이 책을 읽은 지 수십년이 지난 지금도 나의 마음에 울림으로 남아있다. 잘 기억은 나지 않지만 자신도 죽음의 위협이 없는 세상에서 예수를 믿었다면 수차례 예수와 가족과 동료 신자들을 배반하지 않았을 거라는 이야기를 한 듯 하다.

영화를 보며 몇가지 장면이 깊은 생각을 하게한다.

천국에 대한 소망

감옥에 같이 갇힌 한 여인이 신부에게 묻는다. 언제 죽을 지 모르는 상황에서 그녀는 천국에서는 세금도 없고 굶주림도 없는 것이 맞는지 확인 받고 싶어한다. 어느 시대든 민초들의 고통은 지배계층의  폭정과 무거운 세금(각종 노역,병역의무를 포함) 에 기인했고  그것은 죽음만큼 무서운 것이었다. 어쩌면 그들이 받아들인 예수는 그 모든 고통을 벗어나게 하는 해방자이자 현실에서 당한 고난을 믿음으로 견디어 내었을 때 천국의 상을 주시는 의의 심판자 이었을 지도 모른다.  나의 모습도 그들의 믿음과 그다지 다르지 않다. 성경을 더 알고 역사적 의미와 시대 상황을 안다고 나의 믿음이 더 깊어지는 것은 아니다. 천국에 소망을 두고 산다는 나의 고백은 나의 삶에서 내 힘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건이 있을 때만 간절해지는 고무줄 같은 나의 믿음으로 오락 가락 한다. 독재 탄압과 종교적 차별이 없고 하루 세번 배불리 먹을 수 있는 지금 우리의 삶이 천국에서의 그것인지 우리는 생각해 보아야한다.

순교와 배교

키치지로는 두려움에 자신만 예수를 부인하고 가족들이 불 속에서 죽어가는 것을 본 것을 고통스러워하며 배신한 자신의 죄를 여러번 뉘우친다. 그렇지만 그는 여전히 죽음의 공포앞에서 여러번 예수의 조각 판을 밟고 배교를 하지만 그는 여전히 죄를 돌이키고 용서 받기를 구한다. 자신의 믿음을 지키기위해 죽음보다 더한 고문의 고통을 이겨내고 순교를 택하는 신자들이 모습과 대비된다. 죽음으로 자신의 믿음을 지킨 사람과 배신한 자신의 약함을 미워하며 용서를 구하는 사람. 누구도 키티지로를 쉽게 정죄하지 못할 것이다. 죽음을 앞에두고 순교와 배교를 택해야하는 사람들도 있지만 대부분 우리에게는 일상속에서 믿음을 지키는가 아님 잠시 눈을 감고 죄를 짓는가가 우리의 선택이 될 것이다. 작은 선택 들이 나의 습관이 되고 나의 행동과 그 열매를 좌우하게 되는 것을 우리는 알고 있다. 나의 이 볼품 없는 삶속에서의 조그만 갈등과 고민이 나에게는 어쩌면 순교와 배교를 넘나드는 주요한 사건들일 것이다.

용서

동료 신부의 죽음과 자신의 스승의 배교 사실을 알고 약해져가는 상황에서 그도 자신의 죽음이 아닌 자신을 따르는 성도들의 죽음을 앞에두고 시험을 받는다. 침묵하는 예수가 아니라 너 자신이 예수를 밞으면 그들의 생명을 구할 수 있다는 말에 그는 고민한다. 그리고 예수의 음성을 듣는다. “밟아라. 아픔을 알기 위하여 십자가를 짊어지기 위해 세상에 태어난 나는 그 발의 아픔을 알고 있다.”라는 음성에 그는 예수의 얼굴에 발을 올려 놓는다. 그리고 그는 키치지로를 용서한다. 용서는 용서를 받아본 사람이 할 수 있다. 용서는 내가 예수의 제자임을 보여주는 가장 뚜렷한 증거이다.

 

쉽지 않은 주제이지만 세상의 불합리와 불의에 침묵하시는 하나님에 대한 고민은 누구나 갖을 수 있는 의문이다. 그리고 그 고통앞에서 자신을 밟고 가라는 예수의 음성이 그 답이 아닐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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찬양중 묵상

다윗의 불안과 막막함이

나오미의 절망이

욥의 말할 수 없는 고통이

느껴지는가?

그렇다면

다윗의 춤추는 찬양이

나오미의 기쁨이

욥의 소망이

나의 것이 될 것이다.

2017.9.10.

데일 카네기의 인간 관계론을 읽고..

1900년대 초반에 쓰여진 이책을 처음 받아 보았을때 너무도 오래된 책 이기에 과연 현재 우리의 삶에 적용이 가능한가? 하고 의문을 가졌었다. 하지만 책을 읽으며 어느새 손에 펜을 들고 밑줄을 긋기 시작했고 잠시 읽기를 멈추고 생각을 정리하기도 했다. 인간 관계론 (How to win friends and influence people)은 너무나 다양한 사람들과 더불어 살며 같이 일을 하거나 나에게 도움을 줄 친구를 만드는 방법,기술을 알려주는 처세술에 관한 책이다. 하지만 그 모든 방법과 처세의 가장 기본은 인간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상대방이 인정 받는다고 느끼게 하라.그리고 진심으로 인정하라.

누구에게나 있는 인정 받고 싶은 욕구, 이것이 모든 관계에서 중요하다는 것을 우린 잊는다. 상대의 이름을 기억해주고 그가 한 기여에 대해 인정해 주는 것. 우리가 관계에서 그리고 조직에서 부딪히는 많은 갈등과 불협화음은 자신이 인정 받고 싶다는 가장 기본적인 욕망에 기인한다는 것을 우린 알고 있다. 내가 인정 받고 있고 존중 받고 있다고 여기는 사람과 조직에 대해 어찌 성실하지 않을 수 있을까?

웃어라.

웃는 얼굴에 침을 뱉을 수 있을까? 웃음은 우리 삶의 준비 운동이다. 물에 들어가기 전에 준비 운동으로 근육을 풀어 주듯, 웃음은 우리 마음과 생각에 방어막을 만들어주어 나 자신을 지키게 한다. 나 자신을 지킬 수 있어야 상대방을 돌아볼 수 있는 여유가 생긴다. 미소, 유머,위트는 나와 다른 사람들을 위한 기본적인 준비 운동이다.

잘 들어주는 사람이 되어라.

​잘 들어주기만 했는데, 상대는 나를 말을 잘하는 사람으로 기억한다고 한다. 그것은 대화의 기본이 듣는 것이라는 것을 말해준다. 나도 그렇다. 상대에게 정보를 전달하려고 하지 상대의 욕구와 필요를 잘 들으려고 하지 않는다. 잘 들어야 상대의 필요를 알게되고 그 필요를 충족 시켜줄 수 있다. 들어주는 것은 상대에게 관심을 갖는 첫 걸음이다.

상대의 잘못을 지적하지 말아라.

​우리는 다른 사람을 바꿀 수 있다고 착각한다. 사람은 잘 바뀌지 않는다. 조금 더 나아지게 하는 유일한 방법은 칭찬 뿐이다.

그리고 위의 몇가지 충고와 더불어 가장 중요한 황금율은 바로 내가 대접받고 싶은대로 남을 대접 하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무엇이든지 남에게 대접을 받고자 하는 대로 너희도 남을 대접하라 이것이 율법이요 선지자니라”

마태복음 7장 12절 말씀으로 이 말씀 대로만 하면 관계의 깨짐은 피할 수 있을 것이다. 1900년대 초반에 쓰여진 인간 관계론이나 2000년전에 쓰여진 성경에서도 말하는 것은 결국 사람에 대한 관심과 사랑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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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월 프레이져 밸리 주택시장 동향

Fraser Valley 주택시장 동향

지난 달 판매된 프레이져 밸리에서는 총1,937 건의 판매 중 447 건은 타운 하우스 였고 544 건은 아파트였습니다. 전체 판매량 중에 콘도와 타운 하우스의 수요가 그치지 않아서 가격도 꾸준히 오르고 있습니다.

주목할 만한 HPI® 벤치 마크 가격 변동

싱글 하우스 : 966,000 달러로, 밸리의 한 단독 주택 분리 기준 가격은 2017 년 6 월에 비해 3.4 % 증가했으며 2016 년 7 월에 비해 10.0 % 증가했습니다.

Townhomes : 485,900 달러로 타운 하우스의 벤치 마크 가격은 2017 년 6 월에 비해 4.0 % 증가했고 2016 년 7 월에 비해 18.1 % 증가했습니다.

아파트 : 341,100 달러에 프레이저 밸리의 아파트 / 콘도 벤치 마크 가격은 2017 년 6 월에 비해 4.9 % 증가했으며 2016 년 7 월에 비해 33.3 % 증가했습니다.

랭리의 주택 시장 동향…아직 랭리는 공급 부족

랭리는 역사상 가장 큰 신축 붐 한 가운데에 있지만, 충분히 빨리 주택을 짓지는 못하고 있습니다. 공급 부족으로 인해 가격이 상승하고 있습니다. 그리고 캐나다 은행의 최근 0.25 % 금리 인상에도 불구하고 금리는 여전히 매우 낮습니다.

랭리 (Langley)에있는 싱글 주택의 평균 가격은 올해 초 1 백만 달러를 넘었으며 떨어지지 않았습니다. 한편, 콘도와 타운 하우스의 가격은 더 빨리 상승하고 있습니다. 젊은 구매자가 단독 주택을 사는 것의 대안으로 다가구 주택으로 전 환하기 때문입니다.

새 콘도및 타운 홈 건설 줄이어

이전의 B.C.에 의해 부과 된 외국 바이어 세금은 자유 정부는 주택 판매에 대해 잠깐 동안 거래를 머뭇거리게 하였지만 중간 수준의 평균 주택에는 영향을 미치지 않는다는 것이 전문가의 판단입니다.

Langley Township의 통계에 따르면 올해 1 월에서 6 월까지 1,211 채의 주택이 건설되었으며, 작년 같은 기간의 856 채였으며 그 중 797 개가 콘도 또는 타운 하우스였습니다.

Quadra Homes는 현재 Langley Township에서 1,000 Units의 콘도를 개발 중이거나 건설 중이라고 대표인 Warkentin은 말했습니다. 다른 몇몇 개발자들도  프로젝트 계획 중이거나 건설을 시작하려고 합니다.

밑그림 그리기

하루 하루가 무의미하고 힘들고 지칠때가 있다. 멀리 한 줄기 빛은 보이지만 아무리 걸어도 출구가 가까이 오지 않는 긴 터널속을 걸을 때도 있다.  매일 똑 같은 일상과 때로는 생각하지 못했던 일들로 만들어 지는 우리의 하루 하루. 결국 우리는 그 하루를 각자 다른 태도로 받아들이고 행동하며 우리의 평생을 만들어 간다. 나의 오늘, 지금 하고 있는 중요해 보이지 않고 혹은 초라해 보이는 일들이 시간이 지나며 작은 배움들로 내게 축적되어지고 앞으로 내 삶을 바꾸는 시작이며 밑그림이 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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노예로, 남의 집 집사로 혹은 감옥에 갇힌 죄수로 하루 하루의 삶을 살았던 요셉, 그가 그의 앞이 안보이는 힘든 하루 하루를 잘 살았기에 그는 하루 아침에 이집트의 총리가 되었어도 마치 준비된 총리처럼 한 나라의 위기를 기회로 만들고 자신의 가족을 구할 수 있었다. 요셉이 이집트에서 보낸 10년의 기간은 고난이었고 억울함이었지만 훗날 돌아보면 그에게 필요했던 총리 수업이었다. 나의 하루가 초라하고 볼품없다 할지라도 그것은 커다란 계획의 밑그림이 될 수도 있다. 내가 보지 못하는 것이 더 중요한 것일수 있기에 나의 하루 하루를 잘 해석해야 한다.

“네 조상들도 알지 못하던 만나를 광야에서 먹이셨나니 이는 너를 낮추시고 너를 시험하사 마침내 네게 복을 주려 하심이었느니라.(신명기 8:16)”

나를 낮추시고 시험하셨고 고난을 주셨지만 동시에 만나와 매추라기 그리고 구름과 불기둥을 주시는 하나님. 매일 우리에게 일어나는 일들의 의미를 다 해석할 필요는 없다. 우리는 그것들을 다 이해하고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지혜와 능력이 없다. 우리의 몫은 모든 것에 감사하며 그저 하나님의 은혜를 구하는 것. 그리고 각자에게 주어진 오늘 하루를 최선을 다해 살아가는 것, 그것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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캐나다 여행시 사야할 것들~

이민 온 후 10년, 이곳에 오랫동안 살다보니 한국 방문시 선물로 준비 하였을 때 좋은 반응을 받았던 아이템들이 있다. 한국에도 Costco, Ikea등 많은 다국적 기업의 대형 소매점이 들어와 있지만, Costco라도 도시마다 구색이 다르기에 캐나다에서만 살 수 있는 아이템을 정리해 보았다.

로얄젤리, 꿀 제품

꿀, 로얄젤리, 프로 폴리스 제품들은 여러나라 재품들이 있다. 하지만 청정지역에서 생산되는 Bee Product는 중국산등 저가 제품들과는 차별되는 것이 사실이다. 캐나다의 한인 상대의 비타민 가게에는 현지 비타민 가게에는 없는 브랜드가 많다. 비교가 안되기에 가격도 높다. 그래서 현지에서 많이 알려지고 현지 비타민 가게에서 판매하는 제품을 구매하는 것이 좋다. 밴쿠버에는 BeeHappy라는 오래된 브랜드가 믿을 만하다. 단체여행에서 강매나 억지로 구매하는 건강식품은 되도록 피하는 것이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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육포

육포는 술안주 정도로 여겨지지만 사실 간식으로도 좋다. 캐나다의 육포는 여러가지 종류와 양념으로 우리의 입맛에도 맞는 것들이 있다. 최근 Costco에 한국스타일의 돼지고기 육포가 판매 되고 있는데 너무 짜지 않아서 한국인의 취향에도 맞다. 한인 회사가 하는 육포 브랜드도 있다. 한아름 마트등 한인 마트에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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팀 호튼스 커피

캐나다의 유명 하키 선수의 이름을 따서 만든 캐나다의 대표 브랜드이다. 캐나다에서 일년간 어학 연수 후 귀국시 커피와 머그를 기념으로 가져간 기억이 있다. 커피맛은 약간 시큼한 느낌인데 익숙해지면 스타벅스나 맥도날드 커피보다 훨씬 좋다. 특히 블랙으로 마시기에는 너무 강하지 않아 좋다. 도넛도 있지만 사실 우리 입맛에는 많이 달다. 만약 도넛을 구매한다면 더즌(12개)을 사는 것이 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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메이플 시럽

캐나다에서 아침 식사로 먹는 팬케익에 뿌려 먹는 메이플 시럽은 캐나다 동부에서나는 천연 감미료이다. 여러 브랜드가 있지만 대부분의 가정에서는 Costco의 자체 브랜드를 많이 먹는다. 선물용으로는 이쁜 단풍나뭇잎 형상의 병제품도 많다. 나무의 수액을 달여서 만드는 정성이 들어간 식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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밴쿠버 공항 아웃렛

이곳은 최근에 개장한 아웃렛으로 우리가 좋아하는 브랜드의 상품을 30~50% 가격에 살 수 있다. 알마니,코치,폴로등 많은 브랜드가 있고 귀국 비행기를 타기전에 마지막 쇼핑을 즐기기에 좋은 곳이다. 출국편 혹은 입국편의 비행기 안내판도 설치 되어 있다. 중국 관광객들이 두손 가득 쇼핑백을 들고 몰려 다니는 모습도 쉽게 볼 수 있다. 특이한 점은 공항 바로 옆이라서 비행기의 내리는 모습을 아주 가까이서 볼 수 있다.

리더쉽

10년전 온누리교회에서 안수집사 훈련 중 ‘Followership’을 제목으로 한 강의를 들었었다. 교회의 리더쉽을 훈련시키면서  다른 사람을 지원하고 따라가는 방법을 강의하는 것을 인상 깊게 들었었다. 리더는 늘 앞서나가고 사람들을 목적하는 방향으로 나가도록 이끌어가는  사람이라는 나의 편견이 깨지는 순간이었다. 리더는 이끄는 사람이지만 혹은 따라가는 사람이 되어야한다. 그것이 바로 소통이 필요한 이유다.

한국의 정치 상황을 보면서 제일 답답한 것이 바로 이 소통의 문제이다. 리더가 항상 옳을 수가 없는데 그 리더가 구성원의 의견을 수렴할 의지와 능력이 없을 때 어떤 결과가 나오는지 가장 잘 보여주는 예가 바로 지금의 한국의 정치 현실이다. 리더는 그 누구도 아닌 내가 리더이다, 작게는 가정에서, 친구들 사이에서, 교회의 작은 굥동체에서,직장에서 우리는 리더가 될 수 밖에 없다. 그런데 제대로 리더쉽에 대해 배운적도 없고 고민해 보지도 않았기에 리더가 아닌 리더 코스프레를 하고 있는 것이다.

리더는 구성원이 성장 하도록 도와주어야 한다. 그래서 ‘Followership’ 의 도와주고 섬기는 리더쉽과 ‘Fellowship’의 친밀한 교감이 필요하다. 나는 항상 옳으니 나만 따르면 된다는 식의 리더쉽은 적어도 현재와 미래에서는 지양 되어야 한다. 교회에서도 리더는 그랬으면 좋겠다. 목회자가 자신에게 좋을 말만하고 순종하는 교인만 자기 주변에 세워 둔다면 발전이 아닌 후퇴만 있게 될 것이다. 사람을 세우고 키우고 성장 시키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 것이지 우린 잘 알고 있다. 자신과 생각이 같거나 혹은 맹목적으로 따르는 사람만 일을 시키고 옆에 둔다면 그 공동체의 미래는 불투명한 것이다. 다른 사람의 이야기를 듣고 내 생각을 바꿀 수 있는 리더 혹은 필요하다면 지위의 힘이 아닌 논리와 사실로 자신의 논지를 관철 시킬 수 있는 리더가 필요하다.

구성원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는 그런 리더가 되어야 한다. 죽은 나사로를 살리시기 전 누이들의 눈물에 같이 우시는 예수님의 공감능력이 지금 우리에게 절실히 요구된다. 리더는 일을 하지 않아도 된다. 아니 그의 일은 구성원이 일을 잘 하도록 판을 만들어 주면 되는 것이다. 그래서 공감 능력과 소통의 힘이 필요한 것이다. 리더를 선택 할 수 있다면 그의 공감 능력과 소통하는 능력이 있는지 꼼꼼히 살펴 보아야 한다. 그래서 2017년이 우리에게는 중요하다.

오랜 질문

오래전 부터 갖고 있는 질문이 있다. 왜 어떤 사람은 쉽게 죄를 짓고 어떤 사람은 그렇지 않은가? 죄를 지을 수 밖에 없는 환경과 성격을 갖고 사는 사람은 더 죄를 지을 수 밖에 없고 그 만큼 더 쉽게 지옥에 갈 수 밖에 없지 않은가? 물론 모든 불우한 환경에서 자란 사람이 삐뚤어지고 죄를 짓는 것은 아니다. 그리고 많은 것을 누리면서도 죄를 짓고 그 죄를 그들이 가진 돈과 힘으로 덮으며 사는 사람들도 있다. 하지만 조금만 더 가지고 있었다면 그리고 조금만 더 의지가 있었다면 죄를 짓는 과오를 범하지 않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은 나의 마음을 떠나지 않았다.

최근 읽은 미치 앨봄의 ‘8년간의 동행’중에서 그 답을 얻었다. 내용 중 저자 미치는 헨리라는 전과자 출신목사를 만나며 그의 사역 (노숙자를 보살피는)을 알아가고 그의 동역자인 카라의 이야기를 듣게 된다. 그는 마약으로 다리 하나를 잃은 노숙자였으나 헨리의 도움으로 새로운 삶을 살게 된 사람이다.

‘착하게만 살았고 그다지 나쁘다고 할 수는 없는 작은 잘못을 저지르며 산 사람이 있다고 가정하지요. 하나님은 그 사람이 착하게 살 수 밖에 없는 환경에서 태어나게 하셨기에 그 사람이 나쁜 짓을 저지르면 실망합니다. 반면 헨리 목사님이나 저 처럼 나쁜 짓만 하며 산 사람, 온통 나쁜 환경에 둘러싸여 산 사람이 있다고 쳐요. 그런 사람이 좋은 일을 행하면 하나님은 대단히 기뻐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자유 의지를 주셨다. 우리가 처한 환경과 선택의 폭은 다르지만 우리에게 선택의 기회를 주셨다. 그리고 하나님은 우리가 다른 출발점에서 인생을 출발했고 다른 환경에서 살고 있음을 알고  계신다.  매 순간 내리는 결정과 선택이 우리의 성격과 태도를 결정하고 결국 우리의 인생을 바뀌어 질 수 있다는 것은 우리는 알고 있다. 하지만 늘 핑계를 찾는다. 나를 이렇게 만드신 분을 탓하기도 한다.

나를 온전히 알고 계신 분이 계시기에 평안 한가 아니면 두려운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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